
무력의 시작
영화 《꾸뻬씨의 행복여행》의 주인공 헥터는 이 지점에서 예전의 제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습니다. 그는 겉보기에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완벽한 사람입니다. 런던의 잘나가는 정신과 의사이고, 매력적인 파트너도 곁에 있죠. 하지만 정작 자신은 매일 불행하다고 찾아오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깊은 무력감에 빠집니다. "나조차 행복이 뭔지 모르는데, 어떻게 남을 치료하지?"라는 의문과 함께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진짜 행복을 찾기 위해 전 세계로 무작정 여행을 떠납니다.
그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행복을 말합니다. 어떤 이는 돈과 물질적인 성취가 전부라고 말하고, 또 어떤 이는 마음의 평화가 진짜라고 말하죠. 이 장면들을 보면서 저는 직장을 그만두고 방황하던 제 옛 모습이 겹쳐 보여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환경을 바꾸고 회사를 옮기면 내 삶의 무게가 가벼워질 줄 알았는데, 막상 겪어보니 환경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진짜 문제는 외부에 있는 조건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행복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고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소소한 기쁨
회사를 그만두고 한참을 헤매던 시절, 저를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은 대단한 성취나 거창한 미래의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주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상의 순간들이 쌓이면서 제 마음의 빈틈을 채워주기 시작했습니다. 고단했던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해서 시원하게 운동을 한 뒤, 샤워하고 나와 온몸으로 들이키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의 짜릿함이 저를 살렸습니다. 주말 아침이면 시끄러운 알람 소리 없이 느긋하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침대 머리맡에서 여유롭게 챙겨보는 영화 한 편이 그렇게 달콤할 수 없었습니다.
가끔은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영양가 없는 시덥잖은 회사 직장 상사 험담도 하고, 하하호호 배꼽 빠지게 웃으며 보내는 그 평범한 하루하루가 진짜 제 인생의 힐링이자 행복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소소한 일상들의 소중함을 전혀 모른 채, 오직 눈앞의 성공과 성취만을 좇으며 제 자신을 사정없이 채찍질만 했기에 당연히 번아웃이라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영화 속 헥터가 수많은 위험을 겪고 먼 길을 돌아서야 비로소 깨달은 비밀도 결국 이처럼 지금 이 순간 곁에 있는 소중한 것들을 온전히 느끼는 태도였습니다.
현재의 태도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아주 묵직하고 뼈 때리는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 저는 솔직히 예전에 이 질문을 처음 마주했을 때는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늘 채워지지 않는 갈증 속에서 미래의 성공만 바라보며 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가짐이 조금 다릅니다. 비록 남들이 말하는 거창한 성공을 이루지는 못했고 여전히 매일 출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어진 휴식과 일상이 꽤 나쁘지 않고 감사하다는 것을 온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공해야만 행복해진다는 잘못된 공식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자, 이미 지금 여기에 내가 행복해야 할 이유가 너무나도 많이 널려 있었습니다. 이제는 일상 속 작은 여유들을 기분 좋게 챙길 줄 알게 되었고, 그 덕분에 매일 반복되는 회사 생활도 이전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단단한 마음으로 기쁘게 버텨내고 있습니다. 혹시 지금 끊임없는 제자리걸음에 지쳐 번아웃이 오셨다면, 무언가를 완성하고 나서 이 영화를 보려 하지 마세요. 가장 지치고 마음이 허한 지금 이 순간 보셔야 인생의 터닝포인트처럼 가슴 깊숙이 꽂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