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속도
편입을 결심하고 과정을 버텨내면서 가장 저를 힘들게 했던 것은 부족한 공부 시간이나 지치는 체력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무책임하고 눈치 없는 참견이 가장 큰 상처였습니다. 미혼인데 돈이 왜 그렇게 많이 필요하냐는 식의 말들, 그러니까 당장 하루하루 버텨내야 하는 제 현실과 생계를 전혀 모르면서 너무나도 쉽게 뱉어지는 말들이 저를 가장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미혼이라고 해서 삶의 무게가 가벼운 것도 아니고 당장 책임져야 할 일상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제 사정을 깊이 알지도 못하면서 겉만 보고 쉽게 내뱉는 그런 야속한 말들을 들을 때면 마음이 한없이 씁쓸하고 외로워지곤 했습니다.
사회가 암묵적으로 정해둔 나이대별 생애 주기라는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마치 인생의 낙오자가 된 것처럼 바라보는 시선들이 세상에는 참 많습니다. 영화 속 벤자민 역시 늙은 노인의 외모로 태어나 세상이 정해놓은 정상적인 기준과는 전혀 다른 시간의 축을 살아갑니다. 처음부터 비정상으로 분류되어 외딴 삶을 살아야 했던 그의 기묘한 인생을 보며, 저는 타인이 만들어낸 타임라인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할수록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나만의 고유한 속도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남들과 같은 속도로 걷지 않는다고 해서 제 삶이 실패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실마리를 영화를 통해 비로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늦은 시작
직접 편입을 하고 졸업을 준비하는 과정을 겪어보니, 무언가 늦었다는 감각은 대부분 착각이나 타인과의 비교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파릇파릇한 이십 대 초반에 졸업하는 누군가와 서른 중반을 훌쩍 넘긴 제 모습을 자꾸만 같은 출발선에 놓고 비교하니 스스로가 한없이 늦어 보였던 것이지, 오롯이 저만의 시간선 위에서만 바라본다면 그건 그저 제 인생의 타이밍일 뿐이었습니다. 영화 속 벤자민은 시간이 흐를수록 신체적으로 점점 젊어지는 기묘한 삶을 살아갑니다. 세상이 정한 순서를 완전히 무시한 채 선원이 되어 배를 타고, 전쟁을 겪고, 사랑에 빠지지만 그의 삶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고 의미가 있었습니다.
인생에 정해진 올바른 방향이나 순서 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영화는 시각적으로 증명해 줍니다. 어쩌면 늦게 시작한 사람에게는 남들이 가지지 못한 삶의 절실함과 깊은 경험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무의식중에 스며들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살아가면서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른 기회는 없다"는 영화 속 벤자민의 대사가 제 귀에 오래도록 맴돌았던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그건 그저 힘내라는 겉치레 섞인 위로의 말이 아니라, 치열하게 하루를 버텨내는 제 현실에서 가장 사실에 가까운 명언이었기 때문입니다.
후회 없는 선택
제가 결국 포기하지 않고 졸업장을 손에 쥘 수 있었던 것은 제 의지가 남들보다 대단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학점을 다 채우지 못해 반학기를 추가로 더 등록해야 했을 때는 진짜로 다 놓아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악착같이 버텼던 이유는 단 하나, 5년 뒤 혹은 10년 뒤의 제가 과거를 돌아보며 "그때라도 시작할 걸, 그때도 안 늦은 거였는데"라며 가슴을 치고 후회하는 꼴을 정말로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와서 뭘 하겠어"라며 지레 포기해 버리는 순간 미래의 내가 겪을 후회의 무게가 얼마나 클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저는 오늘을 담보로 현재의 발걸음을 묵묵히 옮길 수 있었습니다.
졸업장을 받고 난 지금도 여전히 취업 준비는 이어지고 있고, 고용이 불안정한 계약직 현실 속에서 통장 잔고는 넉넉지 않습니다. 상황이 영화처럼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분명하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금 이 시간이 남들에 의해 뒤처진 '늦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오로지 내 의지로 밀고 나가는 '내가 선택한 시간'이라는 당당한 감각의 회복입니다. 인생에 보편적인 기준이 없는데 대체 무엇이 늦었고 무엇이 이른 것이겠습니까? 타인의 야속한 시선에 내 인생의 시계추를 종속시키지 않고, 10년 뒤의 나에게 당당할 수 있도록 오직 나만의 시계바늘을 바라보며 걸어 나가는 태도야말로 제 인생을 진짜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