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의 미련: 영화 후반작업과 사무직 사이
20대의 나는 누구보다 뜨거웠습니다. 영화 후반작업을 하며 모니터 속 프레임 하나하나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삶을 꿈꿨죠. 비록 똑같은 사무실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 해도, 그곳에선 뭔가 더 특별한 세상이 펼쳐질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습니다. 밤샘 작업이 비일비재한 후반작업의 세계가 과연 내 미래를 책임져줄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결국 저는 일반 사무직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 뒤로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삶이 지치고 무료해질 때마다 제 마음속엔 늘 '만약에'라는 유령이 떠돌았습니다. "그때 내가 영화 후반작업 일을 계속했더라면 지금쯤 더 많은 세상에 눈을 뜨고 즐겁게 일하고 있지 않았을까?", "지금보다는 더 빨리 승진하고 인생이 더 다이내믹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죠.
특히 지금의 업무가 지루하게 느껴질 때면 그 미련은 더 커졌습니다. 같은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영화 일을 했다면 조금은 덜 지루하지 않았을까 상상하곤 합니다. 그런데 문득 그때 인턴 시절 만났던 한 선배의 퇴사 장면이 떠오릅니다. 매일매일이 흥미로울 것 같아 시작했다던 그분은, 막상 겪어보니 이 일도 결국 지루하고 무료하다며 짐을 쌌죠. 똑같은 사무실 안에서 매일 똑같은 모니터를 바라보는 건 매한가지라며 말이죠. 그 당시엔 '나도 저 선배처럼 금방 실망해서 도망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에 도전을 멈췄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두려움조차 결국 제 선택의 정당성을 찾기 위한 핑계였을지도 모릅니다. 40대가 된 지금도 저는 여전히 그 갈림길 앞에 서서 과거를 자책하곤 합니다. 이 지독한 후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고민하던 찰나에, 이 영화를 만났습니다.
다중우주: 내가 선택하지 않은 모든 '나'에게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저처럼 "그때 다른 길을 갔더라면"이라는 질문을 달고 사는 사람들에게 다중우주라는 기막힌 상상을 선물합니다. 영화 속 주인공 에블린은 세탁소를 운영하며 세금 문제에 허덕이는 고단한 중년 여성이지만, 다른 우주에서는 화려한 액션 스타나 성공한 요리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 역시 상상 속에서는 영화 후반작업의 전문가가 되어 멋진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영화는 아주 날카로운 진실을 찌릅니다. 어떤 우주의 나도 각자의 고통과 지루함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죠.
심리학에는 '쾌락 적응'이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화려한 환경에 놓여도 결국 인간은 그 상태에 익숙해지고 다시 무료함을 느낀다는 뜻입니다. 제가 그토록 갈망했던 영화 후반작업도 막상 직업이 되었다면, 인턴 시절 그 선배처럼 매일 반복되는 렌더링과 수정 작업에 치여 지금의 사무직만큼이나 따분해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문제는 '어떤 책상에 앉아 있느냐'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였음을 영화는 말해줍니다. 다중우주 속의 수많은 성공한 나보다 더 소중한 것은, 지금 내 곁에서 고양이들과 눈을 맞추고, 비록 지루할지언정 평화로운 일상을 지켜내고 있는 '현재의 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이직하지 않고, 혹은 더 열심히 해서 승진하지 못했던 그 모든 순간들이 실패가 아니라, 지금의 평온을 만들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습니다.
낙관적 허무주의: 다시 시작하는 40대의 일상
영화는 우리에게 '낙관적 허무주의'라는 생소하지만 따뜻한 개념을 건냅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면, 역설적으로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는 소소한 기쁨이 가장 중요하다"는 논리입니다. 20대 때 영화 일을 포기했다는 사실이 제 인생을 망친 거대한 오답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그 선택 하나가 모든 것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가치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정해진 정답이 없는 삶이라면,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며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지금 당장 내 눈앞에 놓인 업무를 처리하고, 퇴근 후 고양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그 소소한 행위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독 다니엘스는 무의미함 속에서도 서로에게 친절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저 또한 스스로에게 너무 불친절했던 건 아닐까 반성하게 됩니다. "너는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니?"라고 다그치기만 했지, "그 선택 덕분에 지금 이런 평화를 누리고 있잖아"라고 다독여준 적은 없었으니까요. 이제는 삶이 지칠 때마다 '만약에'라는 늪에 빠지는 대신, 영화 속 장난스러운 눈알 스티커처럼 지금 내 일상에 작은 재미를 붙여보려 합니다. 후회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겠지만, 적어도 그 후회가 제 현재를 잡아먹게 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낙관적 허무주의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우주의 나를 부러워하기를 멈추고, 지금 이 지루한 사무실 책상 위에서도 나만의 작은 의미를 찾아내겠다는 다짐, 그것만으로도 제 40대의 리뷰는 충분히 가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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