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조커>(2019)에서 아서 플렉은 단 한 번도 "나는 괴물이 되겠다"고 결심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왔을 뿐인데, 세상이 먼저 그를 벼랑 끝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처음 이 영화를 마주했을 때, 저는 스크린을 보며 묘한 불편함과 서늘함을 동시에 느껴야 했습니다. 아서가 겪는 고립과 절망의 온도가, 어느 지점에서 제 이야기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통을 위한 아등바등 : 결핍을 숨긴 노력
저는 늘 '평범'이라는 범주 안에 머물고 싶었습니다. 스스로가 너무 작고 부족하게만 느껴졌기에, 대단한 돋보임보다는 그저 남들만큼만, 딱 보통의 존재로 보이기 위해 발밑이라도 쫓아가려 아등바등 살았습니다. 남들이 쉴 때 혹여 내 밑천이 드러날까 두려워 남몰래 밤잠을 설쳐가며 노력했고, 그렇게 준비해서 남들 앞에 섰을 때 "잘한다"는 칭칭 한마디를 들으면 그간의 고생을 전부 보상받는 기분에 남몰래 가슴 벅차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아직 멀었다"거나 "기본도 못 하냐"는 냉담한 반응을 마주할 때면, "나는 정말 이것밖에 안 되나" 싶은 깊은 좌절감에 빠져 한참을 괴로워했습니다.
영화 <조커>에서 주인공 아서가 매일같이 오르내리는 가파른 계단은, 평범한 삶이라는 고지에 닿기 위해 숨 가쁘게 올라가야만 하는 우리네 삶의 은유와도 같습니다. 아서는 남들처럼 코미디언이 되고 싶어 남몰래 수첩에 농담을 적고 연습하지만, 세상은 그 노력을 조롱으로 되돌려줍니다. 저 역시 타인의 기준에 나를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세웠던 그 시간들이 영화 속 정적인 화면 구도와 겹쳐 보였습니다. 영화는 대사보다 더 강렬한 장면의 힘으로, 평범이라는 이름의 높은 벽 앞에서 좌절해 본 경험이 있는 이들의 마음을 조용히 흔들어 놓습니다. 발밑까지라도 쫓아가려 아등바등 살았던 저의 지난날들이 아서의 굽은 등 위로 투영되어 가슴 한구석이 시려 왔습니다.
침묵 속에 갇힌 자아 : 가면 뒤의 진심
오랫동안 남들에게 맞추며 살다 보니, 어느 순간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무조건 남이 먼저였고, 상대에 따라 적절한 가면을 바꿔 쓰는 것에 익숙해진 탓에 '진짜 나'를 찾는 법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특히 속마음을 내뱉었다가 누군가의 안주거리가 될까 봐 스스로를 꽁꽁 가둬둔 채 살아왔습니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남들이 나를 떠들 일이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가둔 것이 어쩌면 저를 더 외롭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에서 아서가 쓰는 '광대 분장'은 단순히 직업적인 도구가 아니라, 슬퍼도 웃어야만 하는 강요된 삶의 굴레이자 타인에게 내 본모습을 들키지 않으려는 방어벽처럼 느껴졌습니다.
혼자 있을 때조차 "나는 지금 뭘 하고 싶지? 남들은 이럴 때 보통 뭘 하나?"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그 공허함은 아서가 수첩에 적어 내려가던 서툰 농담들과 닮아 있습니다. 남들을 웃기기 위해 연구하지만 정작 자신은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웃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타인의 시선에 갇혀 나를 잃어버린 현대인의 자화상입니다. 내가 내뱉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으며 스스로를 가둬두었던 침묵의 시간들이, 영화 속 지하철의 차가운 금속성 소음과 겹쳐 들려와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조커가 된 아서가 "나의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코미디였다"고 말할 때, 그 냉소적인 고백이 마치 제 안의 억눌린 자아가 내뱉는 탄식처럼 들렸습니다.
폭발 뒤의 공허함 : 나를 찾는 연습
영화 <조커>의 서사는 주인공이 마침내 그 무거운 가면을 벗어던지는 과정을 아주 느리고 고통스러운 흐름으로 밀고 나갑니다. 아서가 천천히 춤을 추며 계단을 내려오는 후반부의 연출은 억압받던 자아가 비로소 폭발하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저도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저는 감정을 누르는 것이 어느 정도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덕목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아서를 보면서 제가 세웠던 그 벽이 결국 저 자신까지 가두어버렸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힘들 때 힘든 티를 내지 못하고, 기분 나쁠 때 괜찮은 척하고, 슬플 때 웃어야 했던 시간들이 조커의 광기 어린 춤사위 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물론 이 영화가 폭력을 정당화한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하지만, 저는 아서가 끝내 '진짜 나'를 찾는 방식이 비극적일지언정 그 해방감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여전히 혼자 있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헤매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깨달은 것은 남의 기준에 맞춘 '평범'이 결코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나를 가둬두었던 침묵의 벽을 조금씩 허물고, 비록 서툴더라도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제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가면을 내려놓고 제 안의 목소리에 아주 천천히 귀를 기울여보려 합니다. 빠른 답을 내놓기보다 깊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가 주는 서늘한 위로가 유독 길게 남을 것입니다.